광릉(光陵)애서 長峴
《광릉(光陵) 》
11월 28일(갑신)에 양주(楊州) 치소(治所) 아레의 동쪽 풍향연(豊壤縣) 직동(直洞)언덕에
장사 지내고 이름하기를, 광릉(光陵) 이라 하였습니다..
1468년 9월7일 세조(世祖)는 세자(世子)에게 왕위를 물려준 다음날 51세 나이로 승하했다.
에종(睿宗)은 선왕의 묘호(廟號)를 세조(世祖) 라 했다.같은 해 11월 지금의 남양주 광릉수
목원로 354 (진접읍 부평리)에 장사를 지냈다.
광릉 입지는 본래 정흠지(鄭欽之) 정창손(鄭昌孫) 의 문중동래정씨(東萊鄭氏)의 선산이었다.
정창손은 세조와 예조 때 영의정을 재임한 인사이다.그러나 그의 문중 선산이 왕릉으로 채택
되어 조상의 묘를 이장해야 했고 이를 달래기 위해 예종은 호조(戶曹)에 일러
봉원군(蓬原君) 정창손(鄭昌孫)은 조부모(祖父母).부모 및 동생의 무덤을 옮기니..... 중략..
정창손에게는 관. 곽(棺槨) 각각 8.유둔(油芚)8부 (部),종이 1백 권.쌀.콩 아울러 1백 석을
내려주라..."
하고,또 승정원으로 하여금 경기 관찰사(京畿觀察使)에게 치서(馳書)하여 묘(墓)를 만드는
군인(軍人) 50명을 뽑아주었다는 기록이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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